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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4.06.03일자 조선일보> 故鄕의 옛집, 그리고 나무 위의 집 등록자 옥란문화재단
등록일 2014.06.03 조회수 644

<2014.06.03일자 조선일보>


3代의 追憶 서린 나무 위 오두막

祖父는 아버지에게 글 가르쳤고 나는 우리 역사 배우며 꿈 키웠다

고향집 뒷산 나무 위에 지어줬던 집에서 感性을 키웠던 내 子女도 훗날 그 추억의 힘으로

살겠지…

         

         홍사종 옥란문화재단 이사장·작가


     태풍 탓에 바닷가 고향의 옛집 대추나무 고목(古木)에 오랜 세월 기대어 있던 나무 위의 집이
    무너졌다.

    "왕소나무 위에 다시 집을 지어주세요.

    "농번기가 계속되는 추수철 내내 졸라대는 어린 나의 몽니에 지친 아버지가 어머니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쟤가 저렇게 철이 없어. 강당을 지으면 거기서 쌀이 나와, 돈이 나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남양만의 바다가 보이는 나무 위의 집을 '강당(講堂)'이라고 불렀
    다. 이 집은 할아버지가 짓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베껴 아버지를 가르쳤던 곳이었기에 중
    년이 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추억의 사슬로 엮인 이 유적지(?)가 지닌 의미를 그런 이름으
    로라도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곳은 나의 환상 속 놀이터였다. 나무 사다리 하나로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으로 분리
    된 이런 특별한 공간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안다. '잭의 콩나무'처럼 나는 그 강당 위에 올
    라 온갖 경이로운 세상과 만났다. 몰래 숨겨둔 만화책을 통해 나의 상상력은 마음껏 부풀어
    올랐다. 머슴방에서 훔쳐 온 궐련을 빨며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순간 다가올 세상사의 쓴
    맛도 미리 맛봤다. 여름밤 환청처럼 고막을 흔드는 풀벌레 소리, 연못가로 몰려든 반딧불이
    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똥별 잔치도 황홀했지만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추억은 슬며시 올라
    와 옆자리에 누워 우리 역사의 인물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던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박종화의 '한국사' 열두 권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럴싸하게 뻥 튀겨서 어린 내 꿈 안에 온갖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무 이름, 꽃 이름뿐만 아니라 집안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우리 집안이
    고향 땅에서 수백 년 터를 잡고 살아온 사연도 들었다. 할아버지가 뒷동산의 큰 소나무를
    켜서 집을 짓게 된 이야기, 아버지에게 가대(家垈)와 전답 수만 평을 물려주면서 '당신이
    돌아가실 때 저승까지 갖고 갈 수 없어 아버지께 맡긴'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 맡겨지고 또
    내 자식에게 맡겨질 고향 옛집의 앞날도 상상해봤다.

    하지만 내 구원의 공간인 나무 위의 집은 집안 사정으로 끝내 복원되지 않았다. 돈이 나오
    고 쌀이 나오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빠, 나무 위에 집을 지어주세요.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 4학년과 3학년에 올라갔을 때 파김치가 다 된 몸으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를 졸랐다. 미국 영화 '나우 앤 덴'을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본 두 아이가 영화
    속에 나오는 나무 위의 집을 자기들에게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소녀들이 저금통장을 털어
    서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거기서 보낸 추억을 되살리면서 각자 엄마가 되어 만나는 끝 장면
    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며 자기들의 얼마 안 되는 저금통장도 기꺼이 보탤 터이니 그런 집
    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아빠 고향 집 뒷산이면 좋겠어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순간 나는 밀교(密敎)처럼 비밀스럽게 빛을 발하던 내 영혼의 기억 창고 속 '강당'이 소스
    라치게 떠올랐다. 그건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던 내 감각의 살점 속에 돌기처럼 돋아난 가슴
    저린 오래된 간구(懇求)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나는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오는 일도 아니지
    만 주말만 되면 고향의 옛집 뒷동산에 올라 직접 망치를 들고 집을 지었다. 철든 아빠가 철
    는 아이들의 꿈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아이들의 바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가게에 반납한 비디오를 다시 빌려 되돌려보며 스케치해서 똑같은 집
    을 지었다.

    고향의 옛집 뒷산에서 아주 작은 나무 위에 집이 완성되던 날, 아들딸의 초등학교 친구들까
    지 모여 풍선도 날리며 파티를 했다. 그건 내 오랜 소원을 이룬 데 대한 자축(自祝)의 의미
    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아이들 이름을 따서 '예인·유선의 집'으로 명명(命名)한 그 집에서
     아이들은 다른 세상을 향한 출구를 찾아냈다. 나무 높이만큼 높아진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
    렸고 동시를 썼다. 바람소리·새소리,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은밀한 내통도 이루어졌
    고, 산수와 국어와 도덕책이 아닌 감각과 실핏줄 같은 감성이 만들어낸 다른 생각이 한없이
     부풀어 올랐으리라. 내 유년의 경험처럼 바람에서도 살결이 만져질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
    고, 대지에도 심장이 박동함을 느꼈을 것이다.

    한 세월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내게 맡긴 고향의 옛집을 아이들은 더 이상 찾
    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이들이 놀던 나무 위의 집에서는 이제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로 바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내 아버지가 그랬고, 내가 그랬던 것처
    럼 그들도 인생의 여명이 막 동터 오르기 시작한 어린 시절의 꿈이 밀계(密契)처럼 감춰진
    그곳을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 추억의 힘으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음을.

    2년 전 나는 3대째 살아오던 한옥 여러 채와 아름다운 정원, 가대를 내놓아 다문화 가정과
    농어촌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공익 법인을 설립했다. 지금 내 고향 옛집에서는 또 다른
    나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논다.


     홍사종  | 옥란문화재단 이사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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